그린 너머, 우리
19
CHAPTER 01

이름을 틀리는 사람들

2026. 10. 12. · 5,817자 · 공백 포함

솔바람 힐스에 도착한 날, 나린 차이야는 자신의 이름이 세 번 틀리는 것을 들었다.

첫 번째는 공항에서 리조트 버스로 갈아탈 때였다. 운전기사는 명단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나리 차이 씨?”라고 불렀다. 나린은 손을 들었다.

“나린 차이야입니다. 나린.”

“아, 나리. 여기 타면 되지?”

나린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벽 안개 사이로 골프 코스의 능선이 보였다. 치앙마이의 뜨거운 공기와 달리 이곳의 아침은 차갑고 젖어 있었다. 잔디는 아직 어두웠고, 나무 끝에는 밤새 맺힌 물방울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이 풍경을 보기 위해 두 달을 기다렸다. 한국의 골프장은 코스가 정교하고, 외국인 고객도 많으며, 실력이 있으면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태국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는 솔바람 힐스가 좋은 곳이라고 했다. 급여가 제때 나오고, 산악 코스라서 캐디의 코스 리딩 실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린은 버스에서 내리며 작은 수첩을 꺼냈다. 첫 페이지에는 한국어로 적은 문장이 있었다.

‘이름을 정확히 말하기.’

그 문장은 취업 면접을 준비하며 적어 둔 것이었다.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한국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린 차이야. 스물여섯 살. 치앙마이에서 골프 코스를 안내했고, 영어와 태국어를 사용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일하지만, 단지 불쌍한 외국인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인사팀 사무실은 클럽하우스 뒤편의 낮은 건물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형광등과 복사기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책상마다 서류가 쌓여 있었고, 벽에는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사진 속 캐디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누구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앉아서 계약서부터 쓰세요.”

박상철 운영팀장이 서류를 내밀었다. 그는 나린을 보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린은 의자에 앉아 계약서를 한 장씩 확인했다. 근무일, 배정 기준, 평가 항목, 숙소 규정. 한국어가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표시해 두었다가 질문할 생각이었다.

“이 부분은요?”

나린이 평가 항목을 가리켰다.

“고객 만족도.”

“평가 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돼요?”

“고객이 좋다고 하면 좋은 거고, 싫다고 하면 낮아지는 거죠.”

“코스 안내 정확도나 안전 규정은요?”

박 팀장이 그제야 나린을 바라봤다.

“그런 건 기본이에요. 외국인 캐디들은 일단 한국 손님 응대부터 익혀야 합니다.”

“저는 치앙마이에서 4년 일했습니다. 코스 리딩과 클럽 선택 안내는…”

“알아요. 경력서 봤어요. 그래도 여기는 한국이에요.”

말끝이 짧게 닫혔다. 나린은 계약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고객 만족도’ 아래에는 평가권자가 누구인지, 이의 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적혀 있지 않았다.

박 팀장은 서류를 걷어 가며 말했다.

“손님이 틀린 말을 해도 일단 맞춰 주세요. 캐디가 손님을 가르치려 들면 분위기가 깨집니다.”

“안전과 관련된 경우에도요?”

“안전은 우리가 판단합니다.”

그는 다음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외국인 팀은 당분간 단체로 움직여요. 한국인 캐디들 배정이 먼저고, 남는 조가 있으면 들어갑니다. 불만 있으면 미숙 매니저에게 말하고.”

‘외국인 팀.’

나린은 그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대신 계약서 가장자리의 빈 곳에 작은 점을 찍었다. 기억해야 할 말이었다.

탈의실에서 받은 유니폼은 한 치수 컸다. 이름표에는 ‘NARI’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나린은 이름표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알파벳으로 적힌 이름은 발음이 틀릴 가능성이 적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철자부터 달랐다.

옆 사물함에서 누군가 웃었다.

“그거 나리 맞지? 한국 사람들은 나린보다 나리가 부르기 편해.”

말리 수완나였다. 나린은 버스에서 한 자리 뒤에 앉아 있던 사람을 기억했다. 말리는 솔바람 힐스에서 2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어가 유창했고, 직원들이 어떤 말을 할 때 웃어야 하는지 웃지 말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편한 이름으로 부르면 저는 못 알아들어요.”

나린이 말하자 말리가 웃었다.

“그 말, 첫날에는 다 해. 한 달 지나면 그냥 고개를 돌리게 돼.”

“말리 씨도요?”

“나는 처음부터 말리였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리 아줌마’가 됐지. 나이는 네 엄마보다 어리지만.”

골프장에서는 말보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것이 있었다. 그립을 잡는 힘, 카트가 경사를 내려갈 때 몸을 기울이는 방향, 바람이 나무 잎을 흔드는 속도. 사람들은 캐디가 공을 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캐디는 코스가 다음에 무엇을 요구할지 먼저 읽어야 했다.

연습 코스는 1번 홀부터 4번 홀까지였다. 나린은 말리와 함께 카트를 밀며 페어웨이의 경사를 확인했다. 전날 비가 왔는지 벙커 가장자리가 무너져 있었고, 3번 홀 그린 앞에는 물이 고인 자국이 있었다.

“이쪽은 오전에 공이 빨라요.”

나린이 말하자 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한국 손님들은 빨리 친다고 좋아하지는 않아. 설명을 길게 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그러면 짧게 말하면 되죠.”

“짧게 말해도 문제야. 네가 말하면.”

나린은 말리의 얼굴을 보았다. 말리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그때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연습 코스 입구에 멈췄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그는 골프화를 갈아 신지도 않은 채 잔디 위로 걸어왔다. 박 팀장이 급히 달려가 허리를 숙였다.

“이사님, 여기까지 직접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배정표 확인하러 왔습니다.”

남자는 윤도하였다. 나린은 이름을 몰랐지만, 박 팀장이 갑자기 말투를 바꾼 것으로 보아 평범한 직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하는 손에 태블릿을 들고 있었고, 화면에는 캐디 배정표가 떠 있었다.

“오늘 1번 홀 테스트 팀은 누구죠?”

“한국인 선임들이 먼저 보고, 외국인들은 뒤에서…”

“외국인들이라고 묶어 놓은 이유가 뭡니까?”

박 팀장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언어와 고객 응대 문제 때문에…”

“언어 능력 자료가 있습니까?”

“아직 정리 중입니다.”

도하는 화면을 넘기다가 나린 쪽을 보았다. 시선이 이름표에 멈췄다.

“나리 씨?”

나린은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나린 차이야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린 씨.”

그는 바로 고쳤다. 사과가 빨라서 오히려 낯설었다. 나린은 고개만 끄덕였다.

“경력 4년. 치앙마이 산악 코스.”

“네.”

“한국 코스는 처음입니까?”

“솔바람 힐스는 처음이지만, 산악 코스 경험은 있습니다.”

박 팀장이 끼어들었다.

“이사님, 아직 교육 중이라서…”

나린은 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페어웨이 쪽을 가리켰다.

“1번 홀은 지금 바람이 왼쪽 능선에서 내려옵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는 약하게 보이지만 150미터 지점에서 공이 밀릴 수 있습니다. 그린 앞 물 고인 구간도 확인해야 합니다.”

도하는 나린을 바라보았다.

“누가 알려 줬습니까?”

“아무도요. 직접 봤습니다.”

말리의 눈썹이 올라갔다. 박 팀장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도하는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었다. 나린은 그것이 평가인지 메모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 오후 고객팀에 들어가 보세요.”

박 팀장이 즉시 말했다.

“아직 테스트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테스트하는 겁니다.”

“회원 응대가…”

“고객에게 필요한 건 출신지가 아니라 정확한 안내 아닌가요?”

오후 첫 고객은 세 명의 남자였다. 그중 한 명은 나린의 이름표를 보더니 곧바로 물었다.

“태국 사람이야?”

“네.”

“한국말 잘하네. 여기까지 와서 캐디를 하는구나.”

나린은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표정을 굳히지도 않았다.

“오늘 코스와 날씨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4번 홀에서 고객 중 한 명이 카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경사가 급한 구간이었다.

“여기로 내려가면 빠르지?”

“안 됩니다.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내가 운전할 줄 알아.”

“운전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길의 문제입니다. 옆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객의 얼굴이 붉어졌다.

“말대꾸하네.”

나린은 잠시 멈췄다. 말리는 카트 뒤에서 손을 꽉 쥐었다. 도하는 코스 옆 그늘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나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가 나면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고객은 더 큰 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앞쪽 경사면에서 흙이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말리가 재빨리 카트의 브레이크를 확인했다. 도하도 그제야 앞으로 걸어왔다.

“이 구간은 통제하겠습니다.”

고객이 도하를 보며 표정을 바꾸었다. 박 팀장도 뒤늦게 뛰어왔다.

“이사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도하는 고객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나린을 보았다.

“안내가 맞았습니다. 이쪽으로 돌아가시죠.”

나린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도하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부터 맞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라운드가 끝난 뒤 박 팀장은 나린을 사무실 옆 복도로 불렀다.

“첫날부터 손님하고 부딪히면 오래 못 갑니다.”

“안전 때문에 말한 겁니다.”

“여기는 손님 기분을 먼저 보는 곳이에요.”

“그럼 사고가 나도 기분만 좋으면 괜찮습니까?”

박 팀장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말을 예쁘게 해야지. 실력이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나린의 이름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름도 굳이 그렇게 고집할 필요 없습니다. 나리라고 부르면 대답하면 되잖아요.”

나린은 이름표를 떼지 않았다.

“저는 나린입니다.”

“한국에서 일하려면 한국식으로 맞춰야죠.”

“일하는 방식은 배울 수 있습니다. 이름까지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강미숙 매니저가 서류를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박 팀장을 바라보다가 나린에게 말했다.

“오늘 평가표는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박 팀장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미숙은 나린의 이름표를 한 번 보았다.

“표기가 틀렸네요.”

“네.”

“내일 바로 다시 만들게요.”

“정말요?”

“이름은 평가 항목이 아니니까요.”

미숙은 서류를 정리하며 덧붙였다.

“다만 이곳에서는 정확하게 말한 사람이 오히려 예민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기록을 남겨 두세요.”

퇴근 직전, 도하가 복도에 나타났다. 그는 낮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닫으며 말했다.

“오늘 일, 괜찮았습니까?”

“괜찮지 않았습니다.”

도하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깜빡였다.

“어떤 점이…”

“저는 오늘 세 번 이름을 고쳤습니다. 두 번은 그냥 넘어갔고, 한 번은 고집한다고 들었습니다. 손님 앞에서는 외국인이라 코스를 모를 거라는 말을 들었고, 안전을 위해 안 된다고 말했더니 말대꾸한다고 했습니다.”

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린은 그의 태블릿을 바라보았다.

“이사님은 제 이름을 기억할 겁니까?”

“기억하겠습니다.”

“오늘만 말고요.”

“오늘만이 아니라, 계속.”

솔바람 힐스는 자신을 ‘나리’라고 부르려 할 것이다. 외국인이라는 한 칸에 넣고, 실수하면 출신 탓으로 돌릴 것이다. 누군가는 그게 이곳의 방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린은 숙소로 돌아가기 전 수첩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

‘내 이름을 대신 말해 줄 사람을 기다리지 말 것.’

그 순간, 복도 끝의 배정표 프린터가 작동했다. 새 종이 한 장이 출력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린은 무심코 종이를 주웠다.

상단에는 내일의 근무표가 적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또 틀려 있었다.

나리 차이.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 옆에 작은 표시가 하나 붙어 있었다.

‘주의 관찰 대상.’

나린은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정확한 철자로 다시 적었다.

나린 차이야.

내일 아침, 첫 티오프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코스가 아니라 이 종이였다.

· · ·

다음 이야기가 펼쳐질 때,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