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티어의 설계자: PC방에서 호텔 제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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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4

부품표

2026. 10. 16. · 9,197자 · 공백 포함

4화. 부품표

다음 날 아침, 윤도현은 가게 셔터를 올리기 전에 어제 플레이존에서 받아 온 메모를 다시 읽었다.

1번 좌석. 전원 불안정. 3번 좌석. 그래픽 출력 지연. 5번 좌석. 팬 소음과 과열. 6번 좌석. 부팅 중 멈춤. 7번 좌석. 간헐적 재부팅. 9번 좌석. 화면 깜빡임.

메모 아래에는 김성호가 적어 둔 문장이 있었다.

“이번에는 두 대만 먼저.”

도현은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여섯 대 모두가 고장 난 것처럼 보일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모두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품을 한 번에 주문하고, 수리 시간을 줄이고, 비용을 한꺼번에 청구하는 것.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원인이 다른 여섯 대를 같은 부품으로 처리하면, 고장은 줄지 않고 비용만 늘어날 수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도현은 낡은 책상 위에 새 공책을 펼쳤다. 표지를 넘기자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흰 종이가 나타났다. 그는 위쪽에 크게 썼다.

[부품·시간·약속]

첫 번째 칸에는 부품 이름, 두 번째 칸에는 매입 가격, 세 번째 칸에는 사용처, 네 번째 칸에는 작업 시간, 마지막 칸에는 고객에게 설명할 내용을 적기로 했다.

그동안 도현은 머릿속으로 비용을 계산했다. 수리점 규모가 작을 때는 그것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의뢰가 두 곳으로 늘어나자, 기억은 장부가 될 수 없었다. 어디에 어떤 부품을 썼는지, 몇 시간 동안 작업했는지, 고객이 무엇을 알고 동의했는지 남겨야 했다.

그는 플레이존의 두 대를 먼저 적었다.

메모리 모듈 2개. 전원 공급 장치 1개. 점검 예상 1시간 30분. 교체 후 재부팅 테스트 2시간. 재발 시 원인 재확인.

가격을 계산하자 손이 멈췄다. 김성호에게 제시할 금액은 생각보다 높았다. 부품값과 작업비를 합치면 플레이존이 예상한 예산을 조금 넘었다. 도현은 숫자를 지우고 다시 계산했다. 값싼 호환 부품을 쓰면 예산 안에 들어왔다. 대신 품질과 보증 범위가 불확실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이서연이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계산기와 편의점 커피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또 밤새웠어요?”

“밤을 샌 건 아니고, 생각을 오래 했어.”

“생각이 길어지면 보통 숫자가 안 맞는 거죠.”

서연은 공책을 내려다봤다. 도현은 계산한 두 가지 견적을 보여 주었다.

“이쪽은 정식 유통 부품이고, 이쪽은 가격이 낮은 호환 부품이야. 플레이존 예산에는 아래쪽이 맞아.”

서연은 두 견적의 차이를 확인했다.

“보증 기간은요?”

“정식 부품은 판매처 보증이 있고, 호환 부품은 판매처마다 달라. 불량이면 교환은 가능하지만, 교환까지 걸리는 시간이 문제야.”

“그럼 싼 쪽을 쓰면 안 되겠네요.”

“당장 비용만 보면 그래. 그런데 성호 씨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어. 내가 비싼 쪽만 고집하면 일을 놓칠 수도 있고.”

서연은 커피 뚜껑을 열며 말했다.

“일을 놓치는 것과 약속을 잘못하는 건 달라요. 예산이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말하고, 어떤 선택이 어떤 위험을 갖는지 알려 줘야죠.”

도현은 공책의 마지막 칸을 가리켰다.

“고객에게 설명할 내용.”

“맞아요. 부품표는 원가표가 아니라 설명표여야 해요. 우리가 무엇을 샀는지보다, 왜 그걸 선택했는지를 남기는 거죠.”

서연은 공책 한쪽에 문장을 적었다.

정식 유통 부품: 비용이 높지만 보증·교환 기준이 명확함. 저가 호환 부품: 초기 비용이 낮지만 안정성·교환 기간 확인 필요. 고객 선택: 차이와 위험을 설명한 뒤 결정.

도현은 그 문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공이 고객에게 가장 쉽게 하는 거짓말은 ‘이게 제일 좋아요’였다. 실제로는 가격과 시간, 사용 환경에 따라 좋은 부품의 기준이 달라졌다.

“이걸 고객에게 그대로 보여 주면, 우리가 너무 아는 게 없어 보이지 않을까요?”

서연이 물었다.

“반대일 수도 있어.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더 오래 믿을 수 있는 방법일 때가 있으니까.”

서연은 잠깐 웃었다.

“그 말, 장부 맨 앞에 써 두세요.”

도현은 공책의 첫 페이지 아래에 적었다.

모르면 확인하고, 확인한 것은 기록한다.

오전 열한 시, 김성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플레이존의 사장인 그는 전날보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두 대 부품은 확인됐습니까?”

“원인은 어느 정도 좁혔습니다. 다만 부품 선택을 두 가지로 나눠서 안내드리려고 합니다.”

“비싼 것과 싼 것, 그거죠?”

“네. 각각 보증과 교환 조건이 다릅니다. 두 대만 먼저 수리하고 결과를 본 다음 나머지를 판단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한꺼번에 하면 할인 안 됩니까?”

“제 거래처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원인이 확인되지 않은 좌석까지 미리 교체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김성호는 한숨을 쉬었다.

“손님들은 고장 난 좌석이 몇 개인지보다, 자기가 앉은 자리가 멈췄는지만 봅니다. 오늘 저녁에도 꽉 찰 텐데, 두 대만 고치면 또 다른 자리에서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입니다.”

“그래서 좌석별 기록을 만들자고 말씀드린 겁니다. 오늘은 두 대를 수리하면서 나머지 좌석의 온도와 전원 상태를 같이 확인하겠습니다. 수리비와 점검비를 나눠서 적어 드리죠.”

“그렇게 하면 시간이 더 걸리지 않습니까?”

“시간은 조금 더 걸립니다. 대신 무엇을 고쳤는지 나중에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화 너머가 잠시 조용했다.

“도현 씨, 솔직히 말해 주세요. 정식 부품으로 하면 얼마입니까?”

도현은 계산한 금액을 그대로 말했다. 김성호는 숫자를 듣고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호환 부품은요?”

도현도 가격을 말한 뒤 차이를 설명했다. 보증 범위가 다르고, 불량이 생길 경우 교환 기간이 달라질 수 있으며, 부품 자체가 원인을 완전히 해결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 도현 씨라면 뭘 쓰겠어요?”

“제가 쓰는 개인 컴퓨터라면 용도에 따라 다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계속 앉는 PC방 좌석이라면, 장시간 사용과 장애 대응까지 고려해 보증 기준이 분명한 쪽을 우선 검토하겠습니다.”

“결국 비싼 쪽이네요.”

“비싼 게 항상 좋은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확인된 조건에서는 교체 후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나누기 쉬운 쪽입니다.”

김성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두 대만 정식 부품으로 먼저 해 보죠. 대신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습니까?”

“부품을 확보하면 저녁 전까지 1차 작업을 마치겠습니다. 테스트 결과까지 확인한 뒤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손님 개인정보나 이용 기록은 보지 마세요. 지난번에 직원들이 괜히 걱정하더라고요.”

도현은 미소를 지었다.

“작업 기록에는 좌석 번호와 장비 상태만 남기겠습니다. 손님 이름이나 이용 기록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서연은 공책을 펼쳤다.

“손님 개인정보를 보지 말라는 말을 먼저 하는 사장님은 흔하지 않네요.”

“그만큼 예전에 문제가 있었던 거겠지.”

“우리도 원칙으로 만들어 두면 좋겠어요. 고장 점검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보지 않는다.”

도현은 부품표 아래에 한 줄을 추가했다.

[작업 원칙] - 장비 상태 외 개인정보 확인 금지. - 고객 동의 없는 자료 열람 금지. - 교체 부품과 작업 시간을 당일 기록. - 수리 결과와 한계를 함께 설명.

서연은 그 목록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쌓이면 나중에 직원이 생겨도 같은 방식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

“아직 직원은커녕 간판도 없는데.”

“그래도 시스템은 사람이 늘기 전에 만들어야 해요.”

도현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서연이 말한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거창하지 않았다. 공책 한 권, 부품 한 개, 고객에게 건네는 설명 한 장. 하지만 작은 가게가 커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이런 세세한 약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오후 두 시, 도현은 부품을 구하러 김태식의 창고로 향했다. 창고는 상가 뒤편의 낮은 건물에 있었고, 입구에는 서로 다른 제조사의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김태식은 상자 사이에서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왔냐. 플레이존 건?”

“두 대만 먼저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판단이다. 여섯 대를 한 번에 갈아 달라는 사람도 많은데, 원인도 모르고 부품부터 쓰면 나중에 골치 아파.”

태식은 선반에서 전원 공급 장치와 메모리 모듈을 꺼냈다. 상자에는 정식 유통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도현은 상자 뒷면을 살폈다.

“보증은 판매처 기준입니까?”

“이 모델은 제조사 보증이 있고, 유통 경로도 확인돼. 영수증과 시리얼 번호를 같이 보관하면 된다.”

“가격이 생각보다 높네요.”

태식은 도현의 표정을 살폈다.

“싼 것도 있다. 그런데 네가 지금 고치려는 건 손님이 하루 종일 쓰는 기계야. 부품값만 보고 고르면 고장 났을 때 네가 다시 이동하고, 다시 점검하고, 고객에게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럼 싼 부품은 나쁜 겁니까?”

“나쁜 게 아니라 용도가 다른 거지. 사무실에서 예비용으로 쓰는 것과, 매일 열두 시간씩 돌아가는 기계에 쓰는 건 기준이 다르다.”

태식은 낡은 장부를 펼쳤다. 거래처와 부품, 결제 날짜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내가 외상 거래를 조심하는 이유도 비슷해. 돈이 부족한 사람한테 물건을 먼저 주는 건 쉬워. 어려운 건 언제, 어떻게 갚을지 서로 모른 채 약속하는 거야.”

도현은 태식의 장부를 바라봤다. 자신이 작성한 부품표와 비슷한 칸이 오래된 종이 위에 남아 있었다. 물건 이름, 수량, 날짜, 결제. 태식은 수십 년 동안 그런 칸을 채워 온 사람이었다.

“저도 제 장부를 만들고 있습니다.”

“봤다. 글씨가 너무 반듯해서 오래 못 갈 줄 알았는데.”

“왜요?”

“현장 장부는 금방 더러워져야 하거든. 손에 기름 묻고, 숫자 고쳐 쓰고, 반품 표시도 생겨야 해.”

도현은 웃었다.

“그럼 더럽혀 보겠습니다.”

태식은 잠시 망설이다가 두 상자를 도현 앞으로 밀었다.

“이번에는 외상으로 가져가.”

도현은 바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수리비를 받으면 바로 결제하겠습니다.”

“그건 네가 정하면 되고, 나는 거래 조건을 말하는 거다. 대신 수량과 단가, 결제 예정일은 적어.”

“플레이존에서 돈을 받는 날짜가 확정된 건 아닙니다.”

“그럼 확정되지 않았다고 적어. 모르는 날짜를 확정처럼 쓰는 것보다 낫다.”

태식은 작은 거래서를 꺼냈다. 부품 두 개의 이름과 단가, 도현의 가게 이름, 결제 예정일 칸이 적혀 있었다. 도현은 펜을 들고 ‘플레이존 1차 수리비 수령 후 결제, 예정일 미정’이라고 썼다.

태식은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외상이다. 공짜가 아니라 시간을 빌리는 것.”

도현은 거래서 사본을 공책 안쪽에 끼웠다. 처음으로 자신의 사업에 빚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언제 갚아야 하는지 적혀 있는 빚은, 이름 없는 빚보다 견딜 만했다.

“부품을 잘못 고르면 어떻게 합니까?”

“잘못 골랐다는 걸 알았을 때 인정하고 바꾸면 된다. 문제는 틀린 부품을 맞다고 우기는 거야.”

창고를 나서기 전, 태식은 작은 상자 하나를 더 건넸다.

“이건 예비용 케이블이다. 돈 받으면 같이 계산하고, 안 쓰면 돌려줘.”

“이것까지 외상으로요?”

“예비 부품은 고장보다 늦게 도착하는 게 더 비싸다. 다만 안 쓰면 반드시 돌려줘. 네가 쓰지 않은 물건까지 장부에 올리면, 나중에 네가 네 숫자를 못 믿게 된다.”

도현은 케이블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값은 크지 않았지만, 거래의 기준을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플레이존에 도착했을 때 저녁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현은 먼저 3번 좌석의 전원 공급 장치를 교체하고, 6번 좌석의 메모리 모듈을 점검했다. 부품을 바꾸기 전에 기존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려 했지만, 화면에 손님의 계정 정보가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촬영하지 않았다. 대신 전원을 끈 뒤 빈 화면에서 장비 번호와 상태만 기록했다.

서연은 옆에서 시간을 재고 있었다.

“3번 좌석 분해 시작, 오후 5시 12분.”

“전원 공급 장치 교체 완료, 5시 31분.”

“부팅 테스트 시작.”

도현은 게임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았다. 대신 운영에 필요한 기본 화면과 네트워크 연결, 반복 재부팅 여부만 확인했다. 한 번 정상적으로 켜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품이 열을 받았을 때 다시 멈추는지 확인해야 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3번 좌석은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6번 좌석은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켜졌지만, 두 번째 테스트에서 화면이 멈췄다. 도현은 메모리 모듈을 다시 분리해 접점과 슬롯을 확인했다. 원인은 부품 하나가 아니라 슬롯의 접촉 불량일 가능성이 있었다.

김성호가 다가왔다.

“또 부품을 바꿔야 합니까?”

“아직 아닙니다. 지금 바꾸면 원인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접촉 상태를 확인한 뒤 다시 테스트하겠습니다.”

“오늘 안에 쓸 수는 있겠어요?”

“6번은 지금 바로 손님에게 열지 않는 게 좋습니다. 3번은 테스트가 끝나면 사용 가능합니다.”

김성호는 답답한 표정을 지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은 6번 좌석 모니터 아래에 ‘점검 중’ 표지를 붙였다. 손님이 앉지 않도록 막는 것은 매출을 줄이는 일이었지만, 불안정한 장비를 열어 두는 것은 손님과 직원 모두에게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밤 아홉 시, 6번 좌석의 슬롯을 청소하고 모듈을 다시 장착했다. 세 번의 부팅과 한 시간 동안의 기본 테스트를 거친 뒤에야 화면이 안정됐다. 도현은 작업표에 시간을 적었다.

3번 좌석. 원인: 전원 공급 장치 불안정. 조치: 정식 유통 부품 교체. 결과: 부팅·네트워크·기본 부하 테스트 정상. 6번 좌석. 원인: 메모리 접점 및 슬롯 접촉 불량. 조치: 청소·재장착 후 테스트. 결과: 일단 정상, 재발 관찰 필요. 추가 부품 교체: 보류.

김성호는 작업표를 읽었다.

“6번은 부품을 안 바꿔도 됩니까?”

“현재는 그렇습니다. 다만 다시 멈추면 슬롯 자체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럼 비용은요?”

“사용한 부품과 실제 작업 시간만 계산했습니다. 보류한 부품은 청구하지 않습니다.”

김성호는 작업표를 다시 보더니 말했다.

“다른 수리점은 보통 부품을 갈았다고 하고 비용을 받던데요.”

“저희는 사용하지 않은 부품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손해 보면요?”

도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손해를 줄이는 방법은 안 쓴 부품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다음에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록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가 작업표 아래쪽에 서명하는 동안, 플레이존 안에서는 키보드 소리와 게임 소리가 섞여 들렸다. 두 대의 좌석이 다시 켜졌지만, 도현은 그것을 성공이라고 크게 부르지 않았다. 한 대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한 대는 관찰이 필요했다. 정확한 결과는 정확한 말에서 시작돼야 했다.

가게로 돌아온 도현은 부품표에 실제 사용량과 작업 시간을 옮겨 적었다.

정식 전원 공급 장치 1개 사용. 메모리 모듈 1개 사용. 예비 케이블 미사용, 반납 예정. 작업 시간 3시간 17분. 부품 대금: 태식에게 결제 예정. 플레이존 수리비: 일부 확정, 잔액 다음 날 확인.

서연은 숫자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야 우리가 얼마를 벌었는지 보이네요.”

도현은 계산기를 두드렸다.

“벌었다고 하기엔 아직 부품값을 결제하지 않았어.”

“그래도 무엇이 남고 무엇이 빠져나가는지는 보여요. 그게 장부의 역할이죠.”

도현은 첫 페이지의 제목 아래에 작은 문장을 추가했다.

매출은 입금된 돈이고, 이익은 모든 약속을 지킨 뒤 남는 돈이다.

서연이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은요?”

도현은 플레이존에서 받은 작업표를 바라봤다. 여섯 대의 고장으로 시작했지만, 실제로 교체가 필요했던 부품은 하나였다. 나머지 문제는 전원과 환기, 관리 방식에서 생겼다. 부품을 많이 파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부품을 정확히 고르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는 공책 다음 장을 펼쳤다.

[PC방 운영 점검표] - 좌석별 고장 이력. - 전원과 환기 상태. - 부품 교체 전 원인 확인. - 직원의 점검 시간 인정. - 손님 정보 미수집. - 사용한 부품만 청구. - 재발 시 대응 기준.

마지막 줄을 적은 뒤 도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가게에는 아직 간판이 없었고, 주문할 수 있는 부품도 많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빌린 돈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는 부품 하나를 덜 쓰고, 고객 한 명에게 더 정확하게 설명했다. 눈에 띄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도현은 그런 선택들이 사업의 방향을 만든다고 믿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김태식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다.

— 부품표 잘 받았다. 다음 물건은 네가 먼저 필요한 걸 골라 와라.

도현은 답장 대신 공책을 펼쳤다. 그리고 맨 아래에 새로운 거래처 이름을 적었다.

김태식. 조건: 사용분만 결제. 원칙: 미사용 부품 반납. 신뢰: 기록으로 확인.

문자를 보내려는 순간, 태식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 그리고 수리점 이름은 정했냐?

도현은 가게 안을 둘러봤다. 벽에는 아직 빈 자리만 있었고, 유리문에는 예전에 붙어 있던 임대 안내문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작업대 위에는 부품표와 점검표, 고객에게 건넨 설명서가 놓여 있었다.

“아직요.”

도현은 혼잣말처럼 말한 뒤, 공책 표지 안쪽에 한 단어를 적었다.

다시.

고장 난 화면을 다시 켜고, 멈춘 장사를 다시 움직이고, 틀린 선택을 다시 고치는 곳. 이름은 아직 간판이 아니었지만, 도현은 그 단어가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가게 앞에 작은 종이 한 장이 붙었다.

‘PC 수리·운영 점검. 사용한 부품만 청구합니다.’

아래에는 연락처와 함께 손으로 쓴 문장이 있었다.

‘확인한 만큼 설명드리겠습니다.’

도현은 종이를 붙인 뒤 한 걸음 물러섰다. 간판이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초라했다. 그래도 지나가던 사람이 멈춰 읽을 수는 있었다.

저녁 무렵,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 PC방 컴퓨터도 점검합니까?”

도현은 부품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고장 난 뒤뿐 아니라, 반복되는 원인도 함께 확인합니다.”

전화 너머에서 잠시 망설이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럼 내일 와 줄 수 있습니까?”

도현은 공책에 날짜와 장소를 적었다. 아직 계약은 아니었고, 금액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는 먼저 현장을 확인한 뒤 범위와 비용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도현은 책상 위의 부품표를 다시 펼쳤다. 그날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첫 부품표 작성. 첫 외상 거래. 첫 원칙을 지킨 청구.

그리고 그 아래, 김태식에게 받은 문장을 옮겨 적었다.

‘싼 물건과 좋은 거래는 같은 말이 아니다.’

도현은 공책을 덮었다. 작은 수리점의 하루는 부품 몇 개와 숫자 몇 줄로 끝났지만, 그 숫자 안에는 앞으로 지켜야 할 약속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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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가 펼쳐질 때, 다시 만나요.